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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심리] 사랑의 심리학

2007. 10. 2. 14:33 | Posted by 스무
2.사랑 안에서 자아 실현하기


 나는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여러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전시키며, 그 중에서도 사랑의 관계는 가장 내밀한 개인적 영역을 펼쳐내고 성장시키며 실현하기 위한 매개라고 믿는다. 나는 인간이 동료 인간과 동떨어져서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는 믿지않는다. 사랑의 관계에서는 완성되지도 않고 충족되지도 않은, 늘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두 인간이 만난다. 두 인간은 관계 안에서,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서 자신들의 개인적 잠재력이 실현될 수 있기를, 그래서 새로운 발전의 단계를 열어젖힐 수 있기를 희구한다.

 파트너의 반응을 얻게 되면 자기실현은 또 다른 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두 파트너는, 상대방이 반응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상대방에게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현실적 제약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반응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당사자 자신도 상대방에게 마찬가지로 그렇다는 것을 뜻한다. 양 파트너는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싸운다. 두사람 모두 발전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이에 호응한다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상당히 고무를 받게 된다. 그러나 때로 두 사람은 각자의 공과 영향력을 놓고 쉽사리 우위를 다투게 된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행동생태학적 모델 개념을 보면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도덕적이상주의에서실제의삶으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도취적인 낭만성이나 고결한 도덕의 표상을 쉬 떠올린다. 독일 관념론은, 사랑이 주관과 객관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계를 좀더 고차적인 차원에서 통일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라며 사랑에 대한 숭앙을 숨기지 않았다. 헤겔에 따르면, 우리는 사랑 안에서 객체와 하나를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이 객체란 것이 지배하지 않으면서 또 지배당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에고이즘과 경쟁 심리에 지배당한다는 견해는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인간이 자기 자신의 관심사를 연인의 관심사 아래 두는 쪽으로 마음을 먹게 하려면, 사랑을 하는 데 이를 테면 도덕적 교육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윈도 도덕적 감정이나 양심이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가장 의미 있는 차이라고 확신했다. 그에 의하면 참된 윤리적 태도는 타고난 본성을 극복할 때 비로서 드러나게 된다. 도덕적 규범은 인간의 본성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몰도덕적 충동이나 성향, 행동의 경향을 제어하거나 억누르는 임무를 맡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차곡차곡 도덕적 규범을 만들다 보면 싸움과 대결, 이기적인 행동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부정 일변도의 평가를 내리게 될 위험이 있다. 높은 이사의 잣대에 비추어 보면, 사랑하는 사이면 으레 하는 행동이 그들의 불완전함을 표현하는 것으로밖에는 달리 생각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반면 행동생태학이 제시하는 모델 속에서는 실제 삶에 존재하는 사랑의 모순성, 이를테면 끌어당기는 면과 밀어내는 면 사이의 모순이나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모순 따위를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 나는 애드워드 기번이 보낸 경고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데, 기번은 만약 어떤 행위에서 저급한 동기와 고결한 동기를 함께 발견할 수 있다면 고결한 동기 쪽은 믿지 않는 편이 좋다고 충고했다.

 다윈은<종의 기원>(1859년)에서 자신이 종들의 발전에 관해 새롭게 정리한 생각을 보여주었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으로 간주했다. 즉 자신이 처한 환경에 최적의 상태로 적응하는 행동이야말로 생존에서 가장 유리한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다윈의 이론을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반대 균형추를 거두어들이는 계기로 삼았다. 다윈의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전장으로, 즉 더 강하고 더 기민하고 술수에 더 능한 자가 자기보다 약한 자를 몰아내는 전장으로 규정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인간은 자연에서 약한 것밖에 배울 수 없다,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가자 없는 투쟁만이 있음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사실 자연의 생명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른 특면, 즉 협동과 서로 돕는 것 따위도 강조했다. 쟁투 그리고 목숨을 건 경쟁은 종에서 언제나 유해하게 마련이다. 고전적인 비교행동학은 종의 보존내지 공동체에 복무하는 이타적 행동을 요구했다. 동물들에게서도 집단이나 종의 생존에 유리한 기회를 마련해 주는 희생적이거나 심지어 윤리적인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콘래드 로렌츠는 동물과 인간들이 같은 종에 대해 저지르는 살해는 종의 유지에 극도로 불합리한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문명화된 인간은 이러한 본성의 매커니즘을 무력화하고, 자연의도덕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같은 종에 대한 살해는 이성적 도덕의 힘으로 대항해야 하는 것으로서 퇴폐적인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음에도, 종 안의 다른 개체를 위해서라면 그 기회를 포기하는 동물에게서 이제는 인간이 배워야 할 차례였다. 이제, 애국심이나 충성심, 복종, 용기 등의 발로에서 언제라도 기꺼이 타인을 돕고, 공공의 복리를 위해 희생하는 구성원이 많은 종족이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다른 종족을 누르고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는 주장이 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대신, 개체의 이해관계를 공동체의 이해관계 아래 두는 차원 높은 윤리적 기준이 원래 자연의 본성이라며 도출되었고, 사랑과 관련된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전개되었다.

 한편W.D.해밀턴에게서 시작된 사회생물학은 도덕적 이상을 포기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해서 이기적, 이타적 행동이 합목적적일 수 있는 조건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비추어보게 했다. 행동생물학은 사람들이 실제 삶에서 하는 행동에 근접한 자연의 시선으로 인간의 복합적인 사회행동에 접근할 때도 적용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이 보이는 행동 양태를 이해ㅏ기 위해 이타심이라든지 이기심 같은 윤리적 성격을 띠는 특질과 본능에 집착해야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이제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도 각각의 조건에 따라서 어떤 모델이 유리한 생존 기회를 제공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적인 삶 및 자신이 관계하는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어떤 적응 전략을 취하는가? 요컨대 핵심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관계에 구속되는지 독립적인지, 일부일처제인지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제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기회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적해야 할 것은, 사람의 관계에서는 이기심이라고 해서 관계에 꼭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이타심이라고 해서 관계에 꼭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작용하는 이런저런 이데올로기와 혁명적 요소도 마찬가지여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해결해 주거나 관계를 무턱대고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한 개인이 관계를 이루어나가는데 필요한 적응도를 증진시키는 한도 내에서만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규범적인 사랑의 윤리학도 어떤 사랑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는 별 소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로 한다.


 동물을 움직이는 이기심의 원리


 비교행동학의 원리들이 사랑의 심리학에 어느 정도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려면, 오늘날의 비교행동학이 파트너 및 가족 관계와 그 형성을 어떻게 보는지 이야기해야겠다. 진화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적응, 다시 말해서 개체들의 행동으로써 성취되는 번식이라는 다윈의 인식은 비교행동학의 근간이다.

 다윈의 이론은 다시 발생론적 사회 행동을 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는 이기적 유전자 또는 이기심의 원리이다. 즉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유전자의 확산을 최대화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성적으로 성숙된 후손을 되도록 많이 양육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협동이냐 경쟁이야, 또 공동체의 형성이냐 공격적인 경제 설정이냐를 결정하는 모토는, 그것이 자기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시키기에 더 나은 가능성을 제공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다른 개체의 생존을 위해 도움을 주는 행동이나 심지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 처럼보이는 행동도 이타적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이기적 원리에 따르는 것이다. 2세들의 양육을 돕는 것이 성공의 전망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2세를 양육하려는 시도보다 같은 유전자들을 가진 형제자매를 지원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시키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동물들이 이루는 공동체 형태는 이기적 유전자의 원리에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부모와 자식이 결속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데 포육(새끼를 배 속에 품고 있거나 알을 깨고 나오게 하기 위해 돌보는 것)이 필수적인  때에 한하며, 파충류나 어류, 도는 그보다 저급한 동물들은 부모 자식간에 결속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 사이에는 2세 양육에 가장 유리한 협력의 형태가 생겨난다. 새의 경우, 암컷이 알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대개 수컷이 둥지를 지을 재료와 먹이의 조달을 맡는다. 사자는, 암컷이 사냔과 먹이 조달을 담당하고, 수컷은 암컷의 소유자로서 경쟁 상대로부터 자기 권리를 지키고 빈번히 이루저지는 교미를 위해 힘을 비축해놓아야 한다. 갖가지 조류에게서 확인 되었듯이, 협력이 잘 길들여지고 지속적이어서 새끼의 부화율이 높아지게 되면 파트너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동물들은 합목적적이고 응집된 힘을 쏟아 부어서 번식에 이로운 최적점을 찾는 것으로 자신의 사회행동을 결정한다. 개체 혼자 하는 것보다 개체들이 모여서 함께하는 것이 성공률이 높을 때는 협력관계와 공동체의 형태가 생성될 것이다. 아리블 아이베스펠트에 따르면, 공동체가 형성되는 경우는 외부의 위협에 직면해서 도망가는 습성이 나타날 때, 은신처를 찾을 때, 새끼를 양육할 때, 새끼를 양육하고 외부의 적에 대해 연합하는 가운데분업이 이루어질 때 더 촉진된다. 그러나 동물들의 경우에 공동체를 형성케 하는 결속 관계에 성욕은 거의 기여하는 것이 없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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